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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 끄적

가족의 의미

왓두유원 2019. 10. 13. 19:05

아름답지 않다. 결코... 가족 얘길 꺼내는 게 부끄럽다. 가족 그 자체보다 내가 보이는 게 싫은 것 같다. 숨어 있고 싶어 하는 내가 있다. 언제까지 숨어있으려고 하는 걸까.. 준비는 앞으로도 계속 안되어 있을 텐데... 나 자신을 부끄러워하는 내가 있다. 그러길 원하기 때문에 나조차 선뜻 손을 잡고 나올 수가 없다. 세월이 이렇게 흘렀는데도 내 안에 있는 아이는 시간을 느끼질 못하는 듯하다. 그대로 그곳에 있다. 무엇이 그토록 겁이 나는 걸까..

 

이런 나를 가족은 고스란히 보아왔다. 부끄러워서 덜덜 떨며 나가지 못하는 나를 오롯이 보여 줄 수 있는 건 가족들뿐이다. 하지만, 내가 그 시간에 묶인 나를 돌보지 않았듯 우리 가족도 나를 돌보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영역이었다. 오히려 가족이라는 이유로 나보다 다른 사람의 일로 더 바빠야 했다. 자의든 타의든. 도움이 필요해서, 누구도 돌보지 않아서, 내가 하지 않으면 또 엄마와 언니의 몫이 될 것이 자명해서, 또 다시 묶여버렸다. 너무나 버거웠다. 그것은 나의 영역이 아니었다.

 

그런데 돌아오는 결과도 대답도 참담했다. 투명인간이 된 듯 했다. 그때 알았다. 확실히. 가족이 남보다 훨씬 못하다는 것을. 너무도 많은 게 달라졌다. 신경 쓰게 하는 가족이, 화나게 하고 아무 일 없다는 듯 다시 찾아오는 가족이, 나의 고통을 모른척하는 가족이,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말하는 가족이, 아닌걸 아니라고 말 못 하고 내 탓만 하는 가족이, 자기가 원하는 걸 해달라고만 하는 가족이, 억지 부리는 가족이, 힘들 때 더 힘들게 하는 가족이, 그래도 된다고 생각하는 가족이 싫었다. 

 

 

 

나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듯 말하고 싶다. 가족이란 말은 마지막까지 남겨두는 보루처럼 희망의 의미로 쓰이지 않는가. "우리가 함께 가야 할 곳은 저기야? 보이지?"으쌰 힘을 주고 등을 토닥이며, 마음이 열리게 하는 진정성으로 어루만지는 가족. 과정이야 어찌 됐든 결과적으로 훈내 나는 그런 평범한 가족. 그것이 우리 가족이라 나도 말하고 싶다. 하지만 가족이란 내게 포스팅을 썼다가 지우다가 날렸다 다시 써 내려가는 백지장처럼 하얗고 까마득하다.

 

 

 

오늘은 먹을 거로 "이게 가족이냐?"는 말까지 나왔다. 엄마에게 가지를 볶아 놓으면 오래도록 잘 먹질 않으니 빨리 먹어서 없앨 수 있고 맛도 좋다는 가지밥 얘기를 며칠 전부터 했었다. 엄마는 그러자고 해놓고서는 내가 하는 말은 지나가는 말이었나 싶게  깜깜무소식이다. 나도 잊어버릴 것 같아 가지가 보일 때마다 숙제하듯, 당부하듯 엄마에게 가지밥 얘기를 꺼냈다. 물론, 이젠 내가 엄마를 해드려야 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 요원하다.

 

 

그런데 오늘 드.디.어 엄마가 가지밥을 하겠단다. 그런데 왠걸 "그렇게 노래를 부르니 가지밥을 해야지..." 입이 대짜가 나와서 말을 한다. 그럴 거면 안 하는 게 낫다고 했다. 꼭 그렇게 생색내듯 마지못해 한다는 것을 티 팍팍 내며 말을 해야 하나 싶어서. 이유인즉, 오늘 아침 미역국을 끓일 건데 가지밥과 안 어울린다는 것. 그렇다면 본인의 뜻대로 하면될 텐데... 굳이 본인의 선택을 내 탓으로 돌린다. 미뤄진다한들 결사반대할 나도 아니다. 사실 엄마가 못마땅스러운 것은, 아침부터 비벼먹으면 안 좋다'는 엄마의 미신 같은 믿음 때문이다. 그런 본인의 믿음을 따르지 못하게 하고, 하기 싫은 것을 하게 한다는 원망 섞인 목소리였다.

 

 

엄마는 제구실하는 언니는 버선발로 맞아서 이거 해 먹을까 하면, 명령처럼 받아들인다. 하지만 내가 어쩌다 한번 해 먹자는 소리를 하면 보통 '하기 싫은데 꼭 해야 되냐'는 식이다. 부당하다. "한 달 아니 일 년에 몇 번이나 내가 그런 말을 한다고 그러냐고?" 억울하고 서운하다. 그러자 "꼭 저렇게 이유를 단다"며 싱크대에 화풀이다.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난 머릿속으로 '내가 여유가 되면 엄마가 좋아하는 공부도 하게 해 주고.. 맛난 것도 사주고...' 하는 생각을 했었다. 그런데 이럴 때면 요리는커녕 정내미가 뚝 떨어진다. 그런데 엄마는 오히려 이게 가족까지 나올 소리냐며 역정이다.

 

 

왜 그렇게 별게 아닌 걸까...  어느덧 그동안 내가 가족을 위해서 해왔던 것은 당연하고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 있다. 왜 함부로 하게 됐을까.. 지쳐있다. 무관심하다. 서로에게. 억울할수록, 화가 날수록, 함부로 할수록 난 괴물이 되어갔고  말을 잃어갔다. 말을 하는 게 싫었다. 하지만 자꾸 가족은 나에게  쓸데없는 의미 없는 말을 쏟아낸다. 나의 말은 퉁명스럽고 '날 좀 가만히 내버려 두라'는 침묵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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